“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에 대해 절망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 당신이 아시는 길을 통해서 그들에게 유용한 회개의 기회를 주실 수 있다. 교회는 자기 목숨을 끊어 버린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한다.”(카톨릭 교회 교리서 2283)
<9월 22일 내용에 이어서… >
그것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죽었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자비를 간구해 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미사를 봉헌하고 장례식을 거행합니다. 그 사람의 자살을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잘못은 범했지만 아버지의 큰 품으로 받아 주는 것이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 주는 것입니다. 애절한 마음으로 그를 사랑해 주지 못한 안타까움 속에 하느님께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야고보 서간 4장 1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입법자와 심판자는 한 분뿐이십니다.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는 그분이십니다. 그대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한단 말입니까? 우리가 할 일은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에 맡기는 것입니다.”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야고2,13)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잘 보존하고 지켜야 합니다. 하느님만이 시작부터 끝까지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목숨을 직접 해칠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함께 아파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혼자만 겪는 아픔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데 있어서, 그분 뜻에 걸맞은 삶으로 존엄하게 돌아가야겠습니다.
“Quem entregou a sua própria vida não se pode frustrar diante da salvação do seu espírito. Deus pode lhe dar a oportunidade de arrependimento através de um caminho que Ele sabe. A Igreja ora pelas pessoas que entregam as suas próprias vidas. (Catecismo daIgreja Católica 2283)
<continuando do dia 22 de setembro>
Isto se deve ao fato de todos precisarem da piedade de Deus, mesmo ter morrido após ter cometido um grande pecado. Não porque entendemos o suicídio dessa pessoa, mas apesar de ter pecado, devemos recebê-lo com o colo do nosso Pai e com o amor da nossa Mãe. Entregamos a Deus, com o pesar de não termos amado mais.
Na leitura de Tiago 4:12 diz: “Há apenas um Legislador e Juiz, aquele que pode salvar e destruir. Mas quem é você para julgar o seu próximo?”. “E a misericórdia triunfa do juízo.” (Tiago 2:13)
Devemos conservar e cuidar da vida que Deus nos presenteou. Como Deus é o dono da nossa vida, do início ao fim, nós não temos direito de destruí-la. Apesar de estarmos sofrendo, não devemos esquecer que Ele sofre conosco. Devemos lembrar que não sofremos sós. Uma vez que voltamos a Ele, assim como viemos Dele, devemos voltar a Ele com dignidade, de acordo com as palavras Dele.